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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사람?
백마고지역 헤아려보니 올해는 내가 철원 밖에서 산 지 만으로 18년이 되는 해다. 철원에서 딱 18년 살았으니까 이제 절반은 철원 사람 아니라고 해도 되겠다. 그런데 ‘어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체류 시간에 비례해 딱딱 계산되는 것인가, 그럴 리 없겠지. 한참 전부터 나는 내가 철원과 아주 상관없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러다 또 가끔은 어림없이 여전한 철원 사람임을 깨닫기도 했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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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 일지 1
발레 못 갔다. 11시 수업인데 11시 40분에 일어났다. 알람을 9시 30분, 10시, 10시 30분으로 맞췄는데 세 개 다 못 들었다. 아니 첫번째는 들었던가? 조금 더 자도 된다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알람을 끈 것 같기도 한데, 경험인지 상상인지 모르겠고 둘 중 어느 쪽인지가 중요하지도 않다. 아침 여덟 시가 다 되어 잤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발레 가면 힘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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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엄마한테 사랑해 하면서 전화 끊고 나니까 당분간은 이 말을 엄마한테밖에 쓸 수 없다는 게 실감이 나서 울었다. 또 언제 울었냐면 식탁에 앉아서 어두운 작업방 문 안으로 보이는 책상과 캐비넷을 멍하니 보다가 울었다. 이런 식의 5-10초 지속되는 울음이 간헐적으로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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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
1 민아가 소설 원작 영화를 보자고 해서 이수에 갔다. 읽고 많이 울었던 소설이 영화로 나왔으니 내적 오열에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마침 나도 궁금했던 영화야. 주연 배우 중 하나가 무용수거든. 만나서 상영관 들어가는 길에 내가 그렇게 말하자 민아는 몰랐다고 했다. 얘는 정말 작품만 보는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영화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두 주연의 연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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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
스팀덱 케이스를 손에 들고 돌아다니면 미니어처 금관악기를 옮기는 느낌이 든다. 요즘 즐겨 드는 가방엔 스팀덱이 안 들어가서 따로 핸드캐리 케이스를 지참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는 내가 쇼윈도 같은 데에 비친 모습을 보니 어정쩡하게 작은 악기 가방을 든 것 같았다는… 얘기다. 이번 소설 다 쓸 때까지 게임 안 하기로 해놓고 몰래 했다는 (그렇게까지 몰래도 아니었다) 얘기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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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을 써도
이게 유언이/나의 마지막 말이 되어도 괜찮을까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