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스투스

로트네스트 섬의 적법한 지배자이며 모든 쿼카들을 통솔하는 단 하나의 강력한 지도자 햄스투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

1

민아가 소설 원작 영화를 보자고 해서 이수에 갔다. 읽고 많이 울었던 소설이 영화로 나왔으니 내적 오열에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마침 나도 궁금했던 영화야. 주연 배우 중 하나가 무용수거든. 만나서 상영관 들어가는 길에 내가 그렇게 말하자 민아는 몰랐다고 했다. 얘는 정말 작품만 보는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영화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두 주연의 연기는 훌륭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게 영화의 외피에 비해 크게 느껴졌달까, 한 마디로 연기 차력쇼를 보는 느낌이어서 보는 내내 피로가 누적되는 듯했다. 영화 중간중간 큰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이 나왔는데 특히 목련나무가 흔들릴 때, 아 저건 대본상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본다’ 는 지문이 써 있겠지만 사실은 사람이 흔드는 거다, 나무 밑둥을 붙든 스태프 두엇이 혼신의 힘을 다해 흔들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어 몰입이 깨졌다. 왜냐하면 센 바람에 흔들리는 꽃나무는 한 방향으로 수런수런 파도치게 마련인데 영화 속의 나무는 수천 개의 팔을 제각각의 방향으로 뻗듯 중구난방 흔들렸기 때문에.

끝날 즈음에는, 굳이 따지자면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메이킹 필름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영화를 만들려 애쓰고 저마다 기여한 사람들은 사랑할 수 있겠다는 생각.

알 만한 사람이 보면 한눈에 제목을 맞힐 수 있을 텐데도 제목을 굳이 명기하지 않는 이유는 1. 그걸 좋게 본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심지어 내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까닭과 정확히 같은 이유에서 누군가는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있다) 2. 이 영화의 제작에 연루된 사람들이 우연찮게 이 글을 보았을 때 마음 상하는 일이 없길 바라기 때문이다. 실은 나야말로 인색한 평에 마음을 매우 잘 다치는 창작자이기 때문에.

끝나고 나와서는 영화관 옆 골목 2층 칼국수집에서 밥을 먹고 같은 건물 1층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셨다. 영화는 그냥 그랬지만 이 영화는 소주인 것 같아. 마실래? 민아가 물었고 나는 소주를 마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나도 우리가 본 영화가 소주 영화라고 생각했다(이 영화의 후감이 우리와 다른 사람이 있긴 할까?). 그러면서 엄벙덤벙 맥주를 마셨다. 나는 민아에게 원작 소설을 쓴 선생님과 술을 마셨던 경험에 대해 들려주었다. 실은 예전에 선생님 소설을 연극으로 만든 것도 본 적이 있는데, 하고 이야기를 시작해 잠깐 생각에 빠졌다가, 그건 내레이션이 정말 많은 연극이었어 거의 낭독극으로 느껴질 만큼. 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원작의 무게에 휘둘리게 되는 거 아닐까? 소설에 쓰인 말들을 버릴 수가 없는데 영상이나 무대로 옮겨놓기도 힘드니까.

연극을 보고 나왔을 때 선생님이 어땠니? 하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좋았어요. 초대된 사람은 나 하나만이 아니었고 선생님은 연극 제작진과 곧 식사를 하러 가실 예정이었기 때문에 연극이 끝난 후의 대화는 그게 거의 전부였다. 초대된 사람들이 너도나도 좋았다고 했지만 선생님은 그에 대해선 이렇다저렇다 말씀하지 않았다. (고 기억한다.)

그때 선생님은 혹시, 너희는 이게 좋니? 라고, 정말 좋았니? 라고 다시 묻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만약 그때 내가 그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좋기는 했는데요(그건 정말로 그랬다), 원작의 문장들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너무 무리한 게 아닌지 의아했어요. 물론 그들도 소설을 읽고 좋아서 그걸 다른 형태로 만들어보려고 한 거겠지만 소설의 좋음과 무대의 좋음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원작의 좋음을 보전하는 방향 이상의 어떤 도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저는 무대예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상상만 했는데도 너무 싸가지없게 느껴져서 조금 웃겼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말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오늘 아침 갑자기 들었다. 민아와 영화를 보고 온 것은 몇 주 전의 일이고 선생님의 초대로 연극을 본 때는 지금으로부터 칠 년 전 일인데 오늘에 와서야 겨우.

동시에 떠오른 것은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는 성경 말씀이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반대여야 할 것 같다. 겸손하고, 잠잠하고, 인내하는 자에게 천국이 주어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예수는 다르게 말했다. 천국은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약탈하듯 침범해오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원래 내 몫이라는 양 뻔뻔한 자들에게 천국이 있을 것.

거꾸로 말하면 오직 그렇게 구한 것들만이 나의 천국이 되는 것이겠지.

2

생일 이틀인가 사흘 앞두고 컴퓨터가 고장났다. 2015년부터 줄곧 써온 인텔 아이맥 27인치. 사실 고장의 원인은 나다. 기계 노후화를 생각지 못하고 무리한 업데이트를 강행해 컴퓨터가 부팅 화면에서 멈춰버렸다. 사설 업체에 맡기자 데이터 복구 및 OS 재설치 비용으로 66만원(부가세 포함)이 청구되었다. 생일 전날 스타필드 에이스토어에 가서 신형 아이맥을 한참 구경했다. 결국은 새 컴퓨터를 사서 지금 이 글도 그걸로 쓰고 있지만,

나는 새 컴퓨터를 정말로 갖고 싶지 않았다.

이를테면 구옥에서 쫓겨난 기분이라고 할까. 내가 10년을 살던 구옥, 남들이 아무리 낡았다 해도 내 맘에 꼭 들어서 잘만 살던 구옥. 요즘 집들은 이렇게 만들지 않는다, 층고도 낮고 욕조를 없애는 게 트렌드라나, 그런데 이 구옥을 재개발로 허물게 됐으니 당장 나가라는 통보를 들은 것이다. 새 집은 이 구옥을 지은 회사와 같은 건설사에서 설계했으니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과 함께. 아니, 존나 다른데…… 게다가 돈은 돈대로 다 내야 하잖아. 내 헌 집 주고 대신 새 집 받는 게 아니라.

내가 떠올린 비유를 들려주자 재성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서련은 그 집을 엄청나게 학대했잖아? 크롬 탭 300개씩 켜 두고. 그랬지. 나는 인상깊게 본 사이트를 그대로 켜 두는 쪽을 선호했다. 메모를 해 두거나 즐겨찾기에 등록해두는 것보다. 그렇지만 내 구형 아이맥은 그것도 잘 버텨냈다. 그러고 보면 그 컴퓨터로는 몇 글자를 썼을까? 재성이 다시 물었다. 장편 세 권 쓸 때 까지는 맥북으로만 썼지만 이후로는 내내 아이맥으로 썼으니까, 백만 자는 훌쩍 넘겠지…… 그 사실을 떠올리니 눈물을 참을 수 없게 됐다. 나는 백만 자 넘게 동행한 내 작업 동료를 고장낸 거구나.

인터넷으로 주문한 새 아이맥은 생일 저녁에 왔다. 본격적인 세팅은 다음날에 했다. 예전에 구입한 한글 프로그램을 다시 설치하려 하니 인텔맥 전용이라고 해서 씨발씨발 하며 새 프로그램을 샀다. 졸지에 총 삼백만원 가까이 지출하고 보니 차라리 “스스로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라고 믿는 쪽이 정신 건강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지난 주말에는 양평에, 이번 주중에는 속초에 다녀왔다. 양평 풀빌라에서 바비큐를 먹고 주성치 영화를 두 편 보고 다음날 아침 두물머리에서 연잎핫도그를 사먹고 면포도궁에 들렀다. 속초 아야진에서 해수욕을 하고 청초수물회에서 식사를 했다.

날씨가 무척 좋았고 먹은 것은 전부 맛이 좋았다. 주성치 영화를 <소림축구> 정도 밖에는 모른다는 호준은 <구품지마관>을 무척 인상깊게 보았는지 그 얘기를 계속 했다. 나는 면포도궁 야채 고로케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딱 이 가게만을 위해 다시 와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유리는 아야진으로 가는 길, 아야진에서 돌아오는 길에 각각 한번씩 아버지와 통화를 했는데, 통화 내용으로 미루어 유리가 속초에 갈 때마다 들른다는 청초수물회와 장거리 운전을 할 때 먹곤 하는 쌀튀밥 뻥과자 모두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 같았다. 그게 좋게 느껴졌다, 부모도 자식도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는 무형의 레거시. 입에 바나나우유를 머금고 유리가 좋아하는 뻥과자를 한 입 베어물면 바나나킥 맛이 됐다. 조수석에 앉은 호준이 드림시어터 곡을 틀었다. 사실은 드림시어터 곡이 아니고 그냥 내가 잘 모르는 메탈 밴드의 아무 곡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좋았다.

오늘 저녁에는 엄마가 서울에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