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스투스

로트네스트 섬의 적법한 지배자이며 모든 쿼카들을 통솔하는 단 하나의 강력한 지도자 햄스투스

귀거래사

스팀덱 케이스를 손에 들고 돌아다니면 미니어처 금관악기를 옮기는 느낌이 든다. 요즘 즐겨 드는 가방엔 스팀덱이 안 들어가서 따로 핸드캐리 케이스를 지참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는 내가 쇼윈도 같은 데에 비친 모습을 보니 어정쩡하게 작은 악기 가방을 든 것 같았다는… 얘기다. 이번 소설 다 쓸 때까지 게임 안 하기로 해놓고 몰래 했다는 (그렇게까지 몰래도 아니었다) 얘기기도 하다. 스팀덱은 들고 나갔으면서 전자담배 단말기는 안 들고 나가서 만 하루 정도 애를 먹었다.

집에 와 보니 늘 내 차 앞에 주차하는 3층 차주 차가 없었다. 그야 그는 (아마도) 평일 낮 통상근무시간에 일하는 사람이고 나는 이 시간에 귀가하는 일이 딱히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며칠 전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차 좀 들여넣게 잠깐 비켜달라는 연락을 했더니 “저희 집은 아기가 있으니 이 시간(오후 8시 40분 경이었다)에는 연락을 삼가달라”던. 죄송한데 전화를 받기 싫으시면 본인이 뒤에다 차를 대시는 게 어떨까요? 아니면 제가 따로 주차비를 부담하며 다른 데에다 주차를 해 두길 바라시는 걸까요? 이미 그런 적 많은 데다, 말씀하신 것처럼 전화를 삼가느라 댁의 차 뒤에 있는 제 차를 두고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쓸데없는 낭비를 한 경우도 셀 수 없습니다만? 곧 그가 내려와 차를 뺐고 당연히 뒤쪽 자리로 가 주지 않고 내 차 앞을 막았는데 운전석에서 내리는 그에게 앞서 떠올린 말들 중 한 마디도 못했다. 3층 차주는 덩치가 크다. 시비가 커져서 몸싸움이 된다면 내가 이길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여기까지 생각하고 깨달았지 나는 너무 쉽게 폭력을 상상하네. 나는 나만 이런 게 아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이런 사람 많지 않다고도 하더라. 예전 룸메이트랑 술 마시다 걔가 한 말 생각. 언니 난 주먹 사이에 우리집 키 꽂고 다닐 때가 있어요. 그거 되게 좋은 생각이다! 난 감탄했는데 걔가 이어서 말하길, 내가 이 얘기 할 때 언니처럼 반응하는 사람 별로 없어요. 다들 별로 상상을 안 하나? 갑자기 자기가 공격당하는 상황, 그래서 반격을 해야 되는 상황.

지금은 집이고 연어포케를 먹고 있다. 집에 오면서 한 짧은 생각을 일기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으니 제목은 귀거래사 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후에 내가 이 사자성어의 뜻을 정확히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찾아봤는데 사자성어조차 아니고 시의 제목이다. 그렇지만 ‘귀거래사’ 라는 말 자체는 ‘돌아가련다’ 라는 뜻이라고 하니 아주 헛짚은 제목은 아닌 듯하다. 도시 생활 중 현타 와서 전원생활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시니까 주차 용이한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라는 뜻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

비슷하게 ‘들어는 봤는데 뜻을 모르는 성어’ 염화미소가 무슨 뜻인지도 찾아봤다. 나는 이게 마음에 염상될 정도의 아름다운 미소를 뜻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