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면 나는 더 잘난 사람이 되었을 거라는 말을 모친은 몇 번 한 적 있다. 기억 속의 그 여자는 그 사실이 너무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할 때도 있고 점심 먹었니? 라고 물을 때와 다름 없이 심심한 얼굴일 때도 있다. 나보다 젊은 여자였을 때도, 지금보다는 젊었어도 여전히 내가 한참을 더 따라잡아야 할 나이였을 때도 모친은 그런 말을 했다. 나는 내가 그 말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물론 내가 하기에는 건방지고 배은망덕한 생각이라는 점을 의식하면서. 그건 나의 잘남에 대한 말이라기보다 자기가 잘나지 못함(그건 어디까지나 모친의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무튼)에 대한 발언이라는 것도 충분히 안다.
뉘앙스를 조금 바꾸어 나는 이렇게 생각하려 애쓴다. 나는 가히 기적적인 존재다. 나는 충분히 교육받지 못했지만 내 일을 그럭저럭 잘 하고 있고, 지속적인 가정폭력을 겪고서도 (부모의 손에도, 나 스스로도) 죽거나 영구적인 장애를 얻지 않은 상태로 성인이 되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이 생각이 나의 양육자들에게 배은망덕한 생각이란 사실을 알고 있고, 내가 아닌 타인들에게는 다소 재수없는; 생각일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한다. 나는 내가 ‘남보다’ 잘 컸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이건 내가 나의 자존을 긍정하는 다소 복잡한 방식일 뿐이다. 내가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냥’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들어간 자원(모든 고통과 그것을 경유한 시간과 그동안 내가 친 발버둥)이 아까워서다.
동시에 나는 내가 바로 그 여자, 내가 더 나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어야 한다고 말하는 여자의 자식이라는 점을 떠올린다. 그 여자가 낳지 않았어도 나는 나일 수 있었을까? 모친은 그렇다고 믿는 것 같다. 이렇게 생긴, 이 정도의 재능을 지닌, 이런 성격을 타고 난 여자아이의 부모가 중산층이었기를 (이상하게도 자기가 바로 그 중산층 부모가 되고 싶다고는 상상하지 못하며) 바라는 것 같다. 이에 대한 내 의견은 모친의 생각과 조금 다르다. 불과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나 또한 내가 모친에게 물려받은 재능은 없다고 생각했지만(내 생각에 모친은 운동선수를 했어야 하는 사람이다), 어느 아침 모친에게서 직장 동료 이야기를 듣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모친은 성대모사를 곁들인 구연에 비상한 재능이 있었고 모친의 말하기 방식은 내가 소설을 쓸 때 서술에서 (의식도 못한 채) 자주 사용하는 방법과 거의 동일하게 느껴졌다… 말하자면 내가 자랄 동안 모친이야말로 나의 이야기꾼이었다는 사실을 아주 뒤늦게 깨달은 셈이다.
그러니까 더 나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면 나는 아마 내가 될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라는 말은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한(공정하게 말해 내가 자란 고장에서 양친 모두 고졸 학력이면 양호한 편이었다) 부모 슬하에서 자란 사람의 정신 승리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글쎄, 만약 모친이 아닌 다른 사람이, 모친이 바란 대로 물질적 여유와 교양을 두루 갖춘 이상적인 사람이 나를 다시 낳아주겠다고 할 때, 그런 허무맹랑한 일이 가능하다고 할 때,
나는 다시 내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다시 내가 되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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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유리, 호준과 이야기를 나누다 스마트폰과 CCTV가 없던 시절의 조현병 증상은 어땠을지를 궁금해한 적이 있다. 적지 않은 조현병 환자가 자기의 스마트폰이 누군가에게 해킹당해 모든 일상을 감시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니까. 나는 잠시 궁리하다 “그게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 사건 아니야?”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답이 될 수 없는 말이다. 도청장치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아무도 조현병을 앓지 않은 게 아닌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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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에는 공황 발작이 일어나 울었다(혹은 우는 동안 공황 발작이 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향수병이 도진 것 같았다. 집안은 답답하고 바깥으로 나와봤자 맑은 공기로 숨쉴 수 없다는 사실에 치가 떨릴 정도였다. 인근에서 가장 큰 도서관에 가서 회원증을 만들고 책을 빌린 다음 블루리본이 너댓 개 달린 가게에서 우동을 사 먹었다. 그런 뒤에는 기분이 조금 나아졌지만, 나아진 기분으로 내 뇌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상황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더욱 차갑게 상기하는 것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