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뭐하고 있어?
A. 나는 내 피부 바깥으로 단 1mm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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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낮부터 밤까지 유리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여러가지 일관성 없는 화제가 오갔고 그중 몇몇은 우리가 이미 전에 나눈 대화의 의식적 재현이었으며 난데없이 아주 솔직한 심정이나 다른 아무에게도 한 적 없는(왜냐하면 그 순간의 그 대화 전에는 해본 적 없는 생각이어서) 말이 튀어나오기도 했는데 때때로 아주 웃겼다.
물론 대단히 슬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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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는 갑자기 의욕이 솟아서 여러 가지를 했다. 집기를 조금 정리하고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내솥과 전기밥솥을 청소했다. 음식물쓰레기 처리기와 전기압력밥솥의 청소는 방법적 동일성을 지닌다(일부러 모호하고 복잡한 문장을). 둘다 무쇠 내솥에 높은 열을 가하는 방식으로 작동되는 기계라서. 전기압력밥솥이 만드는 흰 쌀밥과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가 만드는 새카맣고 미세한 입자로 된 숯의 대조적 이미지를 떠올리면 약간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에서는 오히려 맛있는 냄새가 날 때가 더 많다. 이 생각을 해도 물론 약간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두 경우 모두 생리적 구역감이 아니라 관념상의 그것임을 생각하면 또 이상한 기분이 되고.
간단한 설거지감은 식기세척기에 넣고 냄비 등 커다란 것은 직접 씻은 다음에 세탁기를 돌렸다. 몇 주 전부터 물티슈 대용으로 쓰고 있는 거즈 손수건을 건조기에서 꺼내서 갰다. 밀린 빨래가 좀 있어서 세탁기를 한번 더 돌렸는데 세탁기와 건조기 전원이 연결된 멀티탭 전원이 갑자기 내려갔다. 전력 사용량이 좀… 많았나?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며 방마다 돌아다니며 당장 쓰지 않는 전자기기의 전원을 내렸다. 멀티탭에 손이 안 닿아서 척추교정용 운동기기(가운데가 연결된 긴 막대기 한 쌍을 십자 모양으로 조정해 사용하는 물건이다)를 이용해 멀티탭 스위치를 누르고 다시 세탁기와 건조기를 켰다. 하는 김에 욕실 청소도 해야겠다 싶어서 5핀-USB 충전 케이블을 꺼내 작년에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주문한 전동청소솔을 연결해 두었다.
그래놓고는 하데스2를 켰다. (그래서 욕실 청소는 무산되었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이날 내가 한 모든 집안일이 원래 했어야 하는 일인 한편 해봤자 크게 티가 나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은은히 머릿속을 배회했다. 어느 누구의 어떤 집안일이든 그러하다는 것을 물론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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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스타필드에 갔다. 올리브영에서 대략 10만원어치 물건을 샀다. 버블폼 핸드워시, 쌍빠 마스크팩, 블랙슈가 워시오프 대용량, 페이스앤바디 괄사, 발 각질 제거 팩, 포지타노 블루베리 캔디, 클렌징 밤(마이멜로디 헤어밴드 증정), 제모크림 등. 와릿이즌에서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샀다. 최근 몇 년간 줄곧 찾아 헤매던 물건이다. 줄 두께와 간격, 소재의 촉감과 두께, 사이즈 등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져 아주 마음에 든다. 늦은 저녁에 귀가해서는 비키니라인과 겨드랑이 제모를 하고 발 각질 제거 팩을 착용한 채 괄사로 측두 마사지를 했다.
WPL 어플 게임머니를 1억 정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