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스투스

로트네스트 섬의 적법한 지배자이며 모든 쿼카들을 통솔하는 단 하나의 강력한 지도자 햄스투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전날에는 새벽 세 시까지 게임했다. 예삿일이긴 한데 일기에 쓰려니까 화가 난다. 이래서 일기 쓰기를 기피해왔던 것이다. 생활이 온통 망가져 있으니까. 역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기를 써야 한다 말할 수도 있다. 떳떳한 일상을 쓰고 싶어서 뭔가 의미있는 일이 없을지 모색하게 되니까.

자기반성적인 이야기로 시작한 김에 일상 진단을 좀 해볼까. 며칠 전까지는 어지럼증이 심했다. 병원에는 가지 않고 증상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며 자가진단만 해 보았는데 이석증이나 전정신경염 가능성이 가장 큰 듯했다. 유리가 종로 세란병원인가, 국내에서 어지럼증 치료로 가장 유명하다는 병원 이름을 알려주었는데 결국에는 가지 않았다.

증상이 발생한 지는 한달, 사라진 지는 일주일쯤 됐다. 어쩌면 스트레스 때문이었을지도? 증상이 발생할 무렵에는 3월 신간 북토크 일정 논의를 하고 있었고 증상이 사라질 무렵에는 북토크에서 사용할 강의록 문안을 다 짠 상태였다. 공교롭게도 그렇다. 그래서 그게 그렇게 스트레스였나…? 그런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데, 내 생각에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건 또 아니긴 했는데…

어지럼증 얘기를 쓰면서 증상을 다시 찾아보니 왠지 울렁울렁한 기분이 들어서 이 얘기는 그만하는 게 좋겠다.

트위터에 누가 기생충 후기를 올려놨길래 보니까 꽤 공감되는 얘기더라. 공감이라기보다, 알겠다… 라는 느낌? 정확한 의미에서 공감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우리집이 제일 어려웠던 시기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데 우리 가족은 오히려 그때 가장 돈독했다. 45톤 덤프트럭을 모는 부친이 반년에서 일년 가까이 임금체불을 당해서 한달에 수백만원씩 나오는 기름값이 전부 빚이 되던 때였다. 농사도 짓는 집이어서 빚은 원래 많았는데 당장 생활비도 안 들어오니-그게 몇 달씩 이어지니- 모친이 이웃집에 나랑 동생 통학 버스비를 꾸러 다녀야 할 정도로 돈이 없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시기에는 맞지 않아서 좋았다. 나는 존나 처맞으면서 컸고 솔직히 맞을 때는 나를 때리는 모친/부친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모친을 먼저 쓴 이유는 부친이 집에 없었기 때문이다)(나와 만나야 나를 때릴 것 아닌가) 집이 진짜로 어려워지니까 아무도 매를 안 들어서 좋았다. 그 즈음에는 나도 동생도 매 맞을 짓을 별로 안 하기도 했다. 저녁마다 모친이 우리를 교회에 데려가 무릎 꿇고 엎드린 채 우는데 -모친은 그걸 기도라고 불렀지만 돌이켜 생각해 볼 때 그건 씻음굿 같은 것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그 꼴을 날마다 보면서도 모친 속 뒤집힐 짓거리를 할 만큼 나나 동생이 못돼먹진 못했던 거다. 그 시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치매와 뇌졸중으로 몸져 누운 조부모를 우리집에 모셔왔는데 그건 또 다른 양상의 불행이었고… 하여간에,

나는 내가 그렇게 가난한 걸 몰랐다. 좀더 정밀하게 말하자면 다들 나만큼은 가난한 줄 알았다. 그래서 딱히 불행하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니 돈독했던 건 나, 동생, 모친 셋이었고 부친은 우리 팀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부친이(일단 그는 임금체불을 당한 당사자가 아닌가) 좀 불쌍해지지만… 문득 또 생각났다, 스물한살때인가 모친이 눈물 그렁그렁 맺힌 눈을 부릅뜨고 부친한테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

“애들이 집에서 밥을 굶고 있는데 당신은 남한테 고기를 사 줬어?”

그때 나랑 동생은 별 생각 없이 끼니를 거른 것이었지만 집에 먹을 만한 게 없기도 했다. 그래서… 그렇게 딱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잘 모르겠다. 원가족 생각을 하면 나를 포함한 모두가 가여우면서도 역겹게 느껴지는데 그게 그렇게 절실한 감각도 아니다.

마침 낮에 냉장고에 붙여둔 만다라트를 유심히 보았는데 거기에 내가 “대출 2000만원 상환”이라는 목표를 적어놨더라. 생각난 김에 방금 확인해보니 올해 목표액의 절반을 상환한 상태다. 이제 막 상반기가 끝나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잘 하고 있는 것이겠지. 나는 내가 넉넉하지 못하게 자란 것이 조금쯤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원가정에서 물려받은 게 정말이지 전혀 없어서 (적어도 물질적으로는) 내가 얼마나 해냈는지 거의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나 잘 하고 있는 것 같아, 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뿌듯하기보다는 막막한 느낌이 든다. 앞으로도 똑같이 또는 더 많이 노력해야 할 텐데 그럴 힘이 남아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

6월 신간 작가의 말을 방금 막 다 썼다.

좌우간에 나는 진짜 열심히 살아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