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은 코미디언이 되어야겠다는 말을 농반진반으로 하고 다녔다. 농반진반이라는 말의 징그러운 점은 농담인 것 같지만 진담 함량이 반이나 되는 것이다…… 요새 식으로 말하면 겉농속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당연히 나 혼자의 끼와 재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당시 만나던 사람과 나의 키 차이가 대략 50cm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런 꿈을 꿀 수 있었다. 우리는 -실로 그 또한 나의 계획에 동의했다는 것은 아니고, 내 구상 속에서의 우리는- 페어로 코미디계에 진출할 계획이었다. 연인 사이의 키 차이가 쩜오미터정도 나고 보면, 둘이서 무얼 해도 예사 그림이 아니게 된다. 사귀는 내내 뭘 봐, 구경났어, 라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나도 그게 구경거리인 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심지어 대놓고 구경거리로 만들 궁리까지 하고 있었다는.
그러니까 이건 된다. 반드시 방송을 탄다. 코미디언 데뷔는 무리라도 화성인 바이러스* 정도는 나갈 수 있다. 그런 믿음이 내게는 있었다. 그러면 실시간 검색어 10위권 안에 한번 딱 오르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쇼핑몰을 열어 한탕 크게 땡기고…… 그렇게 마련한 목돈으로 뭘 할 지까지는 생각을 미처 못 했다.
쓰고 보니 엄청나게 멍청한 소리 같지만 내 안에서는 실현 가능성 81% 정도의 완벽한 인생계획 중 하나였다.
요새는 끼니마다 모친이 보내준 알타리무를 먹는다. 이건 진짜로 맛이 있다. 밥을 먹으며 애인과 메신저 대화를 하는 15분동안 알타리무 이야기밖에 하지 않은 적도 있다.
알타리무 맛있다.
알타리무 너무 맛있다.
알타리무 심하게 맛있어서 먹기를 멈출 수가 없다.
엄마 손맛으로 만든 요리가 자식 입에 대충 다 맞고 맛좋게 마련이니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말해야 우리 모친이 객관적으로 김치 천재인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시식단이라도 꾸려 리뷰를 올리게 해야 할까?
사람마다 김치 입맛이 다 제각각인 것을 알고, 요새는 김치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지만, 우리 모친이 담근 김치는 뭐랄까 취향의 너머에 있는 것이다. 먹는 순간 당신은, 그간 맛본 적 없어서 그리워한 적도 없던 김치의 이데아가 바로 이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이 김치를 먹어보지 못한 지난날들이 안타까워 울게 될지도 모른다.
즉 아무리 양보해도 이것이 전국구 알타리무인 점은 부정할 수 없는데…… 이 맛을 나와 내 동생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국가적 손해가 아닌가? 동포들에게 죄스러운 일이 되지 않는가?
모친이 더 나이 들어 다른 인생을 꿈꾸기 어려워지기 전에 김치 사업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다. 동기는 사익 추구보다 윤리적 의무감에 좀더 가까운 것 같다. 내가 사무와 경영을 맡고 제작 총괄은 모친이 맡고, 좀 잘 되면 제작 보조와 유통 방면의 직원을 좀더 채용하고…… 대박까지는 노리지 않는다. 대박이 나 버리면 모친이 너무 힘들어질 테니까. 이건 품질 관리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인데, 모친의 김치가 맛있는 것이 뭐 대단한 비법 재료가 따로 있어서가 아니고 그냥 모친이 해서 맛있는 것이어서다. 가히 미신적인 영역의 이야기지만 아무튼 그렇다. 김치는 무조건 모친의 손이 닿아야 맛있기 때문에 덮어놓고 대량생산을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역시 식당 납품 등은 최대한 정중히 사양하고 가정 주문만 받는다는 원칙을 둬야 하겠지…… 브랜드 이미지는 정갈하고 소담하게 가야 할까 코믹하고 친숙하게 가야 할까? 기억에 남는 것은 후자겠지만 오래 맛보고 싶은 이미지로 각인하려면 전자를 노려야겠지.
막상 이 페이퍼 컴퍼니의 핵심인력인 모친은 내가 이런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상술한 바는 모두 내가 쓰지 않고 살 경우에 대한 구체적 상상이다. 이런 식의 구상들을 나는 한 마디로 ‘우유병’이라고 부른다. (이솝 우화에서 어떤 사람이 우유를 팔러 시장에 나가며 부자가 될 계획을 세우는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이 글을 참조하면 좋다. https://yoonjongshin.com/archives/4127)
이런 ‘썰’을 한창 풀다 보면 이야기를 듣던 상대가 “그럼 (지금은 또는 아직은) 왜 그렇게 살지 않는데?” 라고 묻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나는 “인생 그렇게 쉽게 살고 싶지 않아서” 라고 대답한다. 기를 쓰고 찾아낸 특이한 아이템을 이용해 방송을 타서는 뚝딱 얻은 인기에 힘입어 쇼핑몰 창업을 하거나 모친의 김치 실력을 등에 업고 김치 사업을 하거나…… (혹은 둘을 결합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쓰고 보니 내가 사업이라는 것을, 특히 판매업을 좀 우습게 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봐 걱정되어서 첨언하자면 맹세코 나는 사업 자체를 만만히 보는 것은 아니다, 던전이라는 ✌️사업✌️ 을 두고도 얼마나 끙끙대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평생 돈돈거리며 살아온 내가 조금 더 풍족한 삶을 꿈꿔 볼 여지는 생길 지 모른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장황한 꿈들을 나는 쉬운 길이라 부른 다음, 그렇게는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니까…… 내가 쓰는 사람, 쓰는 일로만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긍정하는 방식은 참으로 구차하고도 복잡하구나, 그런 감상을 갖게 된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내가 몇 글자를 썼는지를 세고 있다. 이것을 나는 ‘문학을 얼마나 했는지’를 계산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상반기에 발표한 단행본 원고 작업이나 던전에 발표한 단편들(은 재고 작품을 고쳐 실은 것이어서 올해의 생산량으로 칠 수 없다), 에세이, 추천사 등은 제외하고, 하반기 동안 소설로 작업한 원고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가 헤아려보니 대략 15만 자가 나왔다.
첫 단독 단행본을 내기 직전 해에 1년 동안 일기만 80만 자를 썼던 것을 생각하면 많은 분량이라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에 쓴 15만 자는 나 혼자 보려고 쓴 80만 자의 일기와 다르게 거의 빠짐없이 발표되었거나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 쓰고 발표되기까지의 전전긍긍과 그 사이의 사적인 희로애락을 빼고 남는 숫자가 15만이다. 15만 자를 써서 나는 2020년 7월부터 11월까지 살아남았다. 이 사실이 나에게 주는 개인적인 감동이 있다. 나는 화성인 바이러스에 나가서 쇼핑몰 중박 정도 치는 상상은 할 수 있지만 내가 소설을 써서 월세와 공과금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상상은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이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소설쓰기만을 하면서 내가 어찌어찌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아이맥스보다 스펙터클하고 그 어떤 SF보다도 경이롭다. 내 벌이가 얼마나 작고 귀여운지와는 아무래도 별개의 감상인 것 같다.
지금까지 중 내가 가장 건강했던 시기에 나는 다른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쓰지 않고도 살 수 있다…… 쓰지 않아야 오히려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이런 식의, 거의 맹목적인 믿음이었다. 쓰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까지는 검증이 끝났는데 쓰지 않아야만 건강할 수 있다는 가설은 아직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은 욕망도 없는 것 같다, 사람이 조금 퇴폐적인 생활을 할 수도 있는 거지……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라면 건강을 조금 잃어도 괜찮은…… 아닌가? 쓰다가 병원에 실려 간 적이 몇 번 있는데 (생색내려고 하는 소리) 그때는 별로 괜찮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서 이런 말도 아무렇게나 지껄일 수 있다.
대안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상상이 끝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화성인 바이러스와 김치 사업 아이디어 사이에도 10년이라는 시간적 거리가 있다. 기회만 생기면 뭔가 소로소득(불로소득을 노리는 것은 너무 몰염치한 것 같아서)할 거리가 없는지를 모색하게 된다. 다음해에도 쓰기만으로 살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아마도 계속해서 쉬운 길을 상상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그 상상들을 실천에 옮기는 것보다는 지면으로 가져오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다. 이 일이 아무 보상도 되지 않을 때에 몇 번이고 그만두려 했으면서도 결국 그만두지 못한 까닭은 다름이 아니고 이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였다…… 이것을 나의 퇴폐라 여기며 나는 계속 이렇게 살 것 같다. 이 일 때문이라면 약간 아프거나 불행해져도 괜찮다, 고 썼다가 조금 부끄러워져서, 반은 농담이라고 덧붙일까 말까 고민을 하면서……
*전국 각지의 기인들에 대한 취재와 토크 쇼 형식으로 구성된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2009~2013.
2020년 11월 문학 던전 작가생활 특집 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