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스투스

로트네스트 섬의 적법한 지배자이며 모든 쿼카들을 통솔하는 단 하나의 강력한 지도자 햄스투스

왓 엘스, 왓 엘스?

솔직히 이제는 사랑이 질려요.

(상상 속의 관객들 어어— 또는 우우—. 탄식 반 야유 반.)

그렇잖아요, 사랑도 에너지거든요? 누군가한테 반하는 건, 말하자면 사랑의 단초를 느끼는 본능은 불수의근 같은 거라서 본인 의지랑 상관없이 움직이지만, 그 마음을 유지하는 데에는 분명히 에너지가 들어요. 계속 그 누군가를 지켜보면서 내가 진짜로 반한 건지 순간 착시에 속은 건지 판별해야 하잖아요. 반할만한 사람에게 반했다면 기대감이 생길 테고 단순한 착각이었다면 실망하게 되겠죠. 큰 기대는 큰 실망으로 이어질 거고. 제가 너무 비관적인가요?

(상상 속의 공연자는 물을 마시고 말을 이어간다.)

이게 또 마음속에만 있을 때는 괜찮아. 근데 감정은 열렬해질수록 밖으로 분출을 해야 돼요. 그럴 필요성이 생겨요. 서러우면 울어야 하고 화나면 소리라도 질러야 하고 답답하면 직접 뛰어야 되는, 뭔지 알죠? 사랑은 한술 더 뜨죠. 감정을 공개하는 동시에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이기를 요구해요. 얼마나 폭력적이에요? 

(공연자는 황당한 표정으로 관객들을 둘러보며 동의를 구한다.) 

아니 얼마나 폭력적이냐고. 제가 이 분한테 만원을 줄게요. (공연자는 주머니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앞줄 관객 한 명에게 내민다. 관객은 웃으며 몇 번 사양하고 주저하다가 결국 공연자가 내민 지폐를 받는다. 그러자 공연자는 갑자기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돈 받은 관객을 윽박지른다.) 만원 드렸으니까 저한테 십 만원 주세요. (관객들 웃음을 터뜨린다.) 절대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근데 저는 아무 대가 없이 먼저 만 원을 드렸잖아요. 그에 대한 감사로 십 만원 받고 싶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공연자는 어조와 달리 강압적인 태도다. 돈을 받은 관객은 웃다 기침을 하면서 공연자에게서 받은 만 원을 다시 건넨다.) 

그렇죠, 이게 맞죠. 적어도 내가 준만큼은 돌려받아야 돼요. 기왕이면 더 받고 싶은 게 당연하고요. 내가 더 사랑해? 이거 거짓말이에요. 말이야 실컷 할 수 있어요. 그 말이 틀렸다는 증거도 없고 돈도 안 드는데 뭐. 그렇지만 속으로는 항상 상대방이 더 나를 사랑하길 바라요. 왜? 그래야 나를 버리지 않을 테니까. 결국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당신한테서 사랑받고 싶다는 말이에요. 다른 랜덤 아무개의 사랑이 아니라 내가 콕 집어 고른 당신, (공연자가 관객 한 명을 손가락질한다. 공격적이고 집요한 몸짓이다.) 당신의 수제 사랑을 받고 싶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줘야 한다.

당신이 아니면 안 된다.

(관객들 조용하다.)

피곤하죠?

(네.)

에너지 조지게 들죠?

(네.)

제가 사랑이 피곤한 일이라는 걸 자각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열렬한 사랑, 연애, 그런 것으로부터 은퇴? 또는 졸업? 그런 걸 한 느낌. 근데 깨닫고 보니까 이미 꽤 오래전부터 사랑을 피곤해하고 있었더라고요. 한 서른 한두 살 언저리부터. 근데 제가 지금 서른 다섯 살이에요. 졸업한지 4년만에 어? 나 졸업했네? 이랬다는 거죠. (객석에서 작은 웃음소리.) 열렬한 사랑 졸업해서 좋은 점이 뭔지 아세요? 미움이 적어졌다는 거예요. 왜냐? 미움도 에너지니까. 상식적으로, 달리기를 못하는 사람이 수영만 기똥차게 잘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똑같이 심폐지구력과 전신근육의 기여를 요하는 활동인데. 간단하고 이해하기 편한 가설이죠. 사랑을 지속할 에너지가 없는 정신이 미움은 어떻게 유지하겠냐는. 

(공연자는 물을 마신다.)

사실 미움에는 사랑만큼의 에너지가 들진 않아요. 그래서 사랑은 없고 미움만 남은 사람도 많은 거겠죠. 중요한 건 미움의 기전이 사랑하고 정반대라는 점.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나를 미워하길 바라나요? 지금 제일 싫은 사람 떠올려 보세요. 예전 애인? 대통령? 헨리 키신저?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하면 좋을 것 같나요? (네!) 아뇨, 착각이에요. 그쪽도 나를 미워해도 된다, 겠죠. 굳이 나를 미워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안 그래요? (조용하다.) 유명인에게 악플 다는 심정도 그런 거 아니겠어요. 나는 상대방을 알고, 따라서 미워하지만, 상대방은 나를 절대 찾지 못할 거라는, 그래서 ‘어떤 악플러’를 미워할 수는 있어도 진짜 나를 미워하는 건 불가능하리라는 굳은 믿음.

근데 사실 미움 받는 당사자는 자기 미워하는 사람 귀신같이 알아봐요. 고백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공연자는 수줍게 사랑을 고백하는 어조로 말한다.) 저… 사실… 당신을 쭉 미워해왔어요! (관객들 웃는다.) 이 짓거리를 안 해도 내가 자기 미워하는 걸 안다니까요? 바로 이 부분이 피곤한 거예요. 나는 그쪽을 아주 쪼끔 미워했을 뿐인데 그쪽은 나를 처절하게 증오하게 된다고요. 

피곤하죠. 

(공연자는 객석이 응답할 사이를 두지만 객석은 고요하다.)

졸업하고 싶죠. 저는 졸업해서 좋아요. 사실 제가 졸업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저야말로 사랑광인이었으니까. 사랑이 저의 체질이라고 생각했고 혈관에 피 대신 사랑이 흐른다고 느꼈고 실제로 어느 정도 그랬어요. 사랑이 밥 먹여 주고 사랑 때문에 죽으려고 하고… 무슨 힘으로 그러고 살았을까? 어려서? 젊어서? 지금은 뭐, 늙었나? (작은 웃음소리.) 나보다 훨씬 나이든 사람들도 인생이 젖니처럼 흔들거릴 만큼 요란뻑적지근한 사랑을 시작하곤 하던데 나는 너무 성급하게 졸업을 결정한 건 아닐까?

내가 졸업을 하긴 한 건가?

(적막.)

오해는 마세요. 저는 지금도 사랑을 하고 있어요. 미움도 아직 있고요. 말했잖아요, 불수의근 같은 거라고. 피할 길이 없는데 어떡해요 그럼. 끔찍한 건요, 끔찍하기만 한 게 아니라 묘하게 자랑스럽기도 한데, 사랑이 얼마나 피곤한 건지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거죠. 메타 사랑? (웃음소리.) 사랑 2.0? (제법 큰 웃음소리.) 사랑 디렉터스 에디션? (더 큰 웃음소리.) 아무튼 그런 걸 하고 있는 느낌. 뭐 아무리 거창한 이름을 붙여봤자 사랑은 사랑이죠… 또 뭐가 있을까. 또 뭐가 있을까. (공연자는 무대를 종횡으로 서성거리며 중얼댄다.) 아니, 진심으로요.

이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사랑도 미움도 이미 질릴 만큼 한 뒤에는.

(상상 속의 공연자는 실재하지 않는 무대 너머 상상된 스포트라이트를 똑바로 바라본다. 관객들은 일제히 공연자를, 다음으로는 공연자의 시선을 좇아 조명을 바라본다.)

보스토크 VOSTOK 매거진 43호 (2024.01.19) <사랑과 미움의 종말기> 수록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