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너는 사랑하는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 같아.
맞는 말이야.
엄마 무서워?
제일 무섭지. (기본적으로 엄마를 안 무서워하는 게 가능한 일이었어?)
네가 걔를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는 절대로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야.
(그런가?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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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달 말일에는 금문에서 밥을 먹었다. 예전에는 제법 자주 갔는데 이제는 배달만 시켜먹는 집. 자주 가던 시절에는 딜라이트 스퀘어 점포 한 칸을 사용했는데 다시 가 보니까 대략 세 칸 정도를 터 서 확장한 것 같더라. 자리에 앉아서 보니까 중국에서 받은 상장… 같은 것도 벽에 붙어있었다. 왜 한국에 있는 식당이 중국에서 주는 상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성공하셨군요. 그도 그럴 것이 중화요리를 진짜 중화요리처럼 하는 집이다. 마라탕이나 멘보샤같은 거 말고 짜장면, 짬뽕 같은 걸 잘 한다는 뜻이다. 간짜장, 삼선간짜장, 고기튀김을 주문했다. 금문의 또다른 특징은 음식 양이 말도 안 되게 많다는 것이다. 시켜먹을 때마다 그 점을 간과하는데 현장에서라고 다를 리 없었다. 실컷 먹고도 많이 남아서 머쓱해하며 나왔다.
금문이 있는 딜라이트 스퀘어 L층을 나는 ‘바람의 길’이라고 부른다. 카페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주로 그 길로 출퇴근을 했는데 매번 바람이 무척 심하게 불었다. 바람의 길을 거슬러 걸어 교보문고 앞 보틀샵에 방문했다. 선물로 제임슨, 내 몫으로 호세 꾸엘보를 샀다. 그런 다음에는 음악을 들으면서 망원 유수지에 갔다. 옛날 생각.
거센 옛날 생각.
사람들이 어떤 배 밑에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백여 톤짜리 배가 기둥 몇 개에 의지하여 허공에 떠 있는 모양새가 가관(말 그대로)이었는데 그 배의 바닥과 기둥이 딱 네 명에서 여섯 명 정도 둘러앉을 만한 공간을 몇 칸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가는 빗줄기가 약간 날렸고 배 밑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불을 켜서 뒤집어 놓은 휴대폰 위에 음료수 통을 올려 간이 조명을 만들어둔 채였다. 가까이에 가서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듣고 싶다고 털어놓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저기서 몰래 고기 구워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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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에는 낙성대 쪽에서 행사를 한 건 마치고 친구와 만나 소고기를 먹었다. 은평구에는 양촌리라고 거대한 정육식당이 있다. 지역 국회의원이 활동비를 가장 많이 지출한 업소를 조회해 볼 수 있는 사이트가 있었는데, 거기서 은평구 대표 가게를 찾아보면 양촌리가 나온다고 한다. 보풀이 부슬부슬한 종아리 길이 분홍색 양말을 신은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놀이방으로 가는 걸 봤다. 그게 기억에 남은 까닭은 그 애가 신발을 안 신고 양말 바람으로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동치미를 충청도 어느 동굴에서 숙성한다는 내용이 적힌 간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거 봤어? 저거 봤어?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마주 앉은 친구는 내내 눈이 반짝거렸다. 눈물 한 겹을 눈동자 앞에 두른 것처럼. 눈이 매운가. 종종 그 생각을 하느라 젓가락에 허공을 끼우고 있었다. 넌 대인 스킬이 좋은 편은 아니지. 고깃집에 가기 전에 그런 대화가 있었던 게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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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이론 초반 시즌에서 로봇 배틀용 배틀 로봇… 을 만드는 에피소드가 있다. 완성된 로봇은 무섭게 생긴 미니오븐 같았는데, 그 로봇을 두고 주인공 크루가 한 마디씩 한다. 정말 놀라워. 아주 멋있어. 이것만 있으면 세계 정복도 가능하겠어(이런 말까지는 안했던 것 같은데 대충 느낌상). 그중 한 명이 한 말은 거의 정확히 기억에 남았다.
극도로 두렵지만 동시에 사랑을 느껴. 마치 아버지처럼.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마도…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